거기서 뭐하세요?”

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찬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높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술고래를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.

술 마시고 있지.”

술고래는 몹시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.

술은 왜 마셔요?”

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.

잊어버리려고 마신다.”

술고래가 대답했다.

무얼 잊어버려요?”

어린 왕자는 술꾼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.

부끄러운 걸 잊어버리려고 그래.”

술고래는 고래를 떨구며 대답했다.

뭐가 부끄러운데요?”

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물었다.

술 마시는 게 부끄럽지!”

술고래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. 그리고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.

 



값싸지만 매우 독한 술을 앞에 두고 두 남녀가 앉아있다. 그들은 연인 이려나?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그들은 애써 서로의 존재를 외면하며 애 먼데 시선을 돌린다.

우린 뭔가를 축하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너무 슬퍼서 다 잊고 싶을 때도 마신다. 술을 마시면서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, 내가 왜 힘든지, 무엇을 잘못했는지 끝없는 의문 자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려는 것이다. 그것은 아주 찰나이다. 그 잠시간의 망각이 끝난 뒤엔 더 큰 죄책감과 괴로움이 우릴 덮칠 것임을 안다. 그런데도 우리는 그 반짝하는 찰나에 취해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

남자는 모른다. 이제 곧 현실의 고통보다 더 큰 수마가 닥칠 것임을. 멍하니 있는 찰나의 평온은 곧 지나가며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온전한 절망과 좌절뿐임을.

여자는 알고 있다. 이 술을 넘기면 올 망각은 그저 순식간임을. 지금의 이 고통은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 배가 되어 자신을 짓누를 것임을. 그런데도 자신은 탁자 위의 압생트를 홀홀 단숨에 넘겨 버릴 것임을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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